[3박4일][통영여행]01. 바쁜 일이 끝나면 여행이나 가죠.

"바쁜 일만 끝나면 여행이나 가죠."

6월 중순에 했던 그 말은 10월이 되어도 지켜지기 요원해 보였다. 금방 끝날 것 같던 프로젝트는 여러 이유로 지체되었고, '언젠가' 가자고 했던 '그 여행'은 7월, 8월을 넘어 10월에도 실행될 수 없었다.

11월 중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지쳐있었다. 회사에 입사하며 캘린더를 채웠던 야심 찬 계획과 2022년의 목표는 이미 어그러졌고. 수정에 수정, 그리고 또 수정을 거친 결과물을 볼 때면 처음의 뿌듯함은 점차 빛을 잃어갔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주 3회 운동도 헬스장 재등록을 하지 않으며 흐지부지 끝나 결국 2022년 초에 했던 모든 계획이 공중으로 흩어진 셈이었다. 회사에서도 내 개인적인 프로젝트(블로그)에서도, 건강에서도 이룬 일이 없이 한 해가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하던 기분은 더더욱 침체되었다.

"그래서, 우리 여행은 언제 갈까요?"

그래서였을까? 10월 말에 들은 C의 질문에 "12월에 가죠." 하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C는 내 대답에 약간은 놀란 듯 보였다. C가 저 질문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항상 내 대답은 항상 '아직 일이 마무리가 안 되어서요.' 였기 때문이다. 이전의 만남에서도 프로젝트는 끝났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으니, C 역시 나를 바쁘게 했던 '그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요?"
"안 될 건 없죠."

대수롭지 않은 듯 으쓱했지만, 당시 내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정말 가도 될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마음이 복잡했지만 입안을 맴돌던 말을 끝내 삼켰고, 그렇게 11월이 되었다.

출처:pixabay

장기 연차를 한 달 전에 결재받아야 하는 C의 사정 때문에 여행 날짜는 11월 중에 정해야 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기대에 찬 글을 보자 마음속의 거북함이 다시 올라왔다. 날짜를 정하면  정말로 여행이 실행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나는 먼저 여행을 가자고 해 놓고 그때까지도 '정말 이 상황에 회사를 쉬고 여행을 가도 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대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건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만! 나 여행 못 가요!" 하고 소리치고 이 불쾌한 감각에서 해방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여행을 가기로 지인들과 약속했고 그걸 또 취소하고 싶진 않았다. 날짜는 정해졌고, C는 회사에 연차 신청을 냈다. 숙소 예약까지 마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12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의 연차를 사용했다.

세상 일을 혼자 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난을 떨며 바빴던 나 때문에 C와 M이 여행 계획의 많은 부분을 짜 주었다. 그리고 12월 17일 토요일, 팀원들에게 내가 해 놓은 일의 자료를 넘기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회사 대신 고속터미널로 향했고,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는 동안 사내 메신저 토픽에 하나, 둘 동료들의 메시지가 쌓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회사엔 할 일이 넘쳤다. 바쁜 일정이었다. 이전에 영종도 당일치기 여행을 갈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바쁜 일정에 빠지게 되어 여행 당일까지도 내 가슴 속에는 불쾌한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프로젝트 준비는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었고, 사내 메시지의 분주함도 내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나 없이도 회사는 괜찮았다. 그렇다. 사원 한 명이 없어도 굴러가는 곳, 그것이 회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