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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재활기/교환학생을 준비하다

교환학생 준비하기(4)-이탈리아를 선택하다

by 김알람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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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둘이 술을 마시며 한 약속이 있었다. 

 

우리 돈 모아서 나중에 이탈리아로 여행 가자

물론 그 약속은 내가 늦깎이 대학 4학년 생이었던 그때까지 지켜지지 못했다. 가끔 그 친구와 '우리 그래서 이탈리아 여행은 언제 하냐?'며 이야기한 적도 있지만 그 친구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마... 실현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토플 점수를 받고 교환학생으로 갈 나라를 정하면서 그때의 약속이 문득 떠올랐다. 어차피 유럽의 어느 나라든(?) 가기로 한 거, 친구와 했던 약속을 혼자서라도 이행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탈리아에 아는 학교는 하나도 없었고, 찾아본 결과 내 전공인 A학과에서 교환학생을 받아주지도 않았지만, '국제학부'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지의 교환학생들을 모아서 따로? 영어 수업을 받게 해주는 학교가 있었다. 국제학부로 가게 되면 내 전공인 A뿐 아니라 다른 전공 수업도 들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친구와의 약속만으로 이탈리아를 선택한 건 아니다. 

고등학생 때 고전영화 몇 편을 (강제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목록에 있던 십여 편의 고전 영화 중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영화 &amp;amp;amp;amp;lt;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 The Bicycle Thief, 1948)&amp;amp;amp;amp;gt;의 스틸 컷, 출처:네이버 영화

전쟁 후 이탈리아가 배경인 이 영화는,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아온 도시를 헤매는 '안토니오(아빠)'와 '브루노(아들)'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한 줄로 소개하니 웃길 수도 있겠지만 이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가 아니다. 실직자가 넘쳐나는 전후의 이탈리아. '안토니오'는 직업소개소에서 간신히 '포스터 붙이는 일'을 받게 된다. 도시 이곳저곳에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선 자전거가 꼭 필요했는데, 아내 '마리아'가 자신이 소중히 했던 것을 담보로 맡기고 전당포에서 자전거를 빌려온다. 이들 가족에게 빌린 자전거는 생계 수단이자, 내일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 그 자체였다. 

 

결국 '안토니오'와 '브루노'는 자전거를 찾았을까? 스포일러는 좋지 않으니 나는 말을 아끼겠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처음 접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영화'들과는 너무 달랐고... 이유를 모르겠지만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중에 이 영화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전후 이탈리아의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담으려 노력한 이탈리아 사실주의)이라 분류된다는 걸 알았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흥미가 잠시 불탔다가... 꺼졌던 적이 있었다. 

 

이후 긴 시간이 흐른 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up,1966)>이란 영화를 보고 이탈리아 영화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 역시 잠시 내 머릿속에 머무른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머릿속에는 이렇게 잠깐의 불씨가 타올랐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생각을 할 뿐 행동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떤 테드 강의를 봤더니 사람이란 대체로 그런 존재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생각에서 벗어나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다. 

 

계속해서 샛길로 빠지는데... 

이에 더해서 이탈리아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또?라고 생각할 여러분을 위해 말하자면 이게 마지막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 1학년생 때 한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나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책으로 미술에 대해 겉핥기 식으로 배우게 되었다. 악명 높은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 읽고 요약까지 해야 했으니 학생들의 아우성이 대단했다. 미술학도도 아닌 내가 <서양미술사>를?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신입생일 때의 나는 학교의 골수까지 빼먹겠다는 패기로 넘쳤고, 돈 아까운 것보다는 빡센 수업이 100배 1000배 낫다는 생각(이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이었기에 수업에 아주 열정적이었다. 

 

나 포함 몇 명을 빼고 점점 탈주를 시도하는 게 눈에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 수업은 내가 대학에서 들었던 모든 수업 중 top 3에 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미술전공은 아니지만 미술작품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나의 전공 교수님 덕분에 화가라곤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밖에 모르던 나는 하나의 강렬한 광원으로 빛과 그림자를 탁월히 연출했던 '카라바조'라던지 교수님이 정말 좋아했던 화가이자 마치 천국의 한 장면을 떼어놓은 듯 한 그림을 그리던 '루벤스'라던지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리고 개 중 가장 천재였던) '라파엘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술사에 대해서 이렇게나마 배우지 않았으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여성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알 수 있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amp;amp;amp;amp;lt;자화상&amp;amp;amp;amp;gt; 1638-9년 추정, 98.6cm &amp;amp;amp;amp;times; 75.2cm(38.8인치 &amp;amp;amp;amp;times; 29.6인치) 출처:위키피디아

교수님은 책을 펴놓고 스크린에서 구글 검색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수업을 했었다. 스크린에 뜬 이미지를 보면 작은 탄식을 내쉬면서 항상 하던 말이 '이렇게(인터넷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면 모르겠지만 직접 보면 다르다'였다. 이 말을 한 학기 동안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직접 보면 뭐가, 얼마나 다르다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언젠가 꼭 직접 보고서 정말 '다른지' 확인하고, 다르지 않다면 교수님에게 가서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 역시 그때 잠깐 반짝 들었다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사라졌었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란 화가는 아마도 이후 글을 작성하면서 몇 번 더 언급될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들었던 수업에서 이 대단한 여성 화가가 등장하기도 했었고, 17세기라는 어마어마한 구시대에 화가가 된 이 분에게 반해버린 내가 이 사람의 작품을 보기 위해 우피치 미술관에 찾아가기도 했으니까. 또 딴 길로 빠져버렸는데, 어쨌거나 파릇파릇한 신입생 시절 나에게 만족스러운 수업을 해 주었던 교수님의 여파로 나는 미술사에 대해서 쥐똥만큼은 이해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 고등학생 때의 기억, 대학교 신입생 때의 다짐이 교환학생으로 갈 나라를 유럽에서 무작위(?)로 고르려던 나의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고, 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학교를 1 지망으로 신청서를 내게 된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번에야 진짜로 집 구하기에 대해 짧은 경험을 써 보려고 한다. 나는 교환학생을 갈 여러분에게 혼자 사는 것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데, 그 이유도 다음 글에 함께 적겠다. 일단은 내가 집을 구했던 사이트가 지금도 살아있는지 검색해봐야겠다. 그래야 여러분에게 추천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오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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