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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재활기/교환학생을 준비하다

교환학생 준비하기(1)

by 김알람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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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도전을 힘들게 만드는 나의 커다란 결점...

그건 바로... 영어였다. 

난 영어를... 못했다... 진짜 못했다. 

 

수능에서 받은 영어성적은 4등급.

결과를 확인한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이라곤

'모의고사 때는 3등급 나왔는데 4등급?? 개 못 봤네;;'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회상해보니 그냥 적당한 등급을 받은 거였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의고사 때도 거의 4등급이었다가 운 좋게 3등급 받았던 걸 

그때부터 나 혼자 희망 회로 돌리고 3등급으로 생각해왔던 거였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를 생각해보면 4등급을 받은 것도 인간승리에 가깝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잘 못하겠는 걸 회피하는 성향인데 

부모님은 (나를 키울 때 까지는) 사교육에 회의적인 성격이셔서 

초등학생 때까지 나를 거의 방목해서 키우셨다.

남들은 영어유치원에 수학예습하는데 

나는 서울에 살면서도 오랑우탄처럼 놀기만 하니 

당연히 초등학생 때의 나는 공부를 따라가지 못했고 

 기억 상 중하에서 중 사이를 간당간당하게 턱걸이하는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다 

가끔은 부진아 반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도 했으니 쥐뿔도 없는 초등학생이면서도 

나는 공부에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사정이 좀 나아졌는데 

그 이유는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학생 수준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모삼천지교라고 어떤 부모님은 자식을 좋은 학군에 넣으려고 이사까지 다닌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던 게 나한테는 득이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교우관계도 별로였고 성적도 별로여서 

고학년이 되었을 즈음엔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있었는데 

(물론 현재 내가 하는 추측이다. 솔직히 이미 고대적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시험을 좀 보자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 중 대다수가 내 수준이라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모 중학교에는 다른 좋은 중학교를 가지 못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백두상 정상에 쌓인 눈처럼 소수 존재했고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 도찐개찐 한녀석들이었다. 

공부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데 

이미 기질 형성이 잘못된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공부를 좀 하면 점점 내 등수가 올라가는 것만 보였다.

다행히(?) 상위권 몇... 십 명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이 나와 같은 공부 존못이었기 때문에 

나의 노력은 통했다. 점점 석차가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예전에는 나보다 석차가 높았던 애들을 따라잡으면서

나의 공부 방식은 더더욱 잘못된 물이 들어버렸다. 

공부 자체의 즐거움보다 

남보다 잘한다는 걸 등수로 확인받는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용의 꼬리 vs닭의 머리 일 때 사람마다 더 맞는 쪽이 있겠지만

나는 확실히 용보다는 닭 정도의 그릇이다. 

자기가 닿지 못하는 경지를 보면서 투지를 활활 불태우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밑을 보면서 나 정도면 괜찮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비겁한 소시민도 있는 법이니까. 

지금에야 나의 이런 사고방식이 진절머리가 나고 위를 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당시를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식(?)으로라도 으스대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게 행운이다. 

밑을 보고 안심하는 것도 밑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중학생인 나는 내 밑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고,

조금 더 큰 목표는 전교 석차라는 거대한 산에서 중상에 서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했다. 

만약 초등학생인 나의 성적에 놀란 부모님이 나를 좋은 중학교에 넣었다면

나는 이미 사교육 코스로 저 멀리 앞서가는 애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라는 산에서 탈주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은 걸 정말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보여주기 식 공부를 하던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영어였다. 

사교육에 진심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녀교육에서 가장 신경 쓰는 과목이 영어인 만큼

영어란 과목에는 예상외의 실력자들이 많았다. 

딴 과목은 다 못해도 옛날부터 영어학원에 다녀서

영어만 점수가 나오는 영어 몰빵캐들이 심심찮게 있었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영어란 과목에 기반이 아예 없었다. 

외국어는 암기와 응용력을 모두 요하는 고급 과목인데 

나는 중요한 초등시절을 그냥 날렸기 때문에 암기 베이스가 아예 전무했고

국어와 어순이 다른 영어의 구조를...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중1 때부터 맘 잡고 했으면 수능 볼 때까지 그 수준은 아니었을 텐데

'못 할 것 같은 건 하기 싫다'는 내 심각한 단점이 발휘되어 나는 영어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원래 등한시했으니 등한시하는 걸 유지했다거나 

아예 마음속에서 지웠다는 게 더 그럴듯하다. 

 

이건 세계 1 짱 미국이 지구촌을 좌지우지하는 

earth를 살아가는 시민 중 한 사람으로서 크나큰 패착이었다는 것을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 

 

공부를 나름 하는 학생들 사이에 수포자나 과학 포기자 사탐 포기자는 존재하지만

영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때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영어는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평생 외국인과 만나서 하이 헬로 안녕을 할 필요 없는 직업을 가져도

기본적으로 토익은 따 두는 게 이 세계의 법칙이었다. 

영어를 포기하는 건 공부를 포기하는 거였는데 

옛날의 나는 그걸 몰랐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서 입시 준비를 하면서 

나는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된다. 

그래서 부랴부랴 학원을 찾아봤지만 이미 내 수준은... '영어'라는 걸 지금껏 공부해온 

성실한 학생들과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쳐져 있었다. 

그래도 고2가 되어서는 어떻게 친구가 다니는 영어학원에 꼽사리를 끼게 되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그게 큰 행운이었다. 

입시생의 입장으로 그 학원을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학원은 절대 아니었다. 

같은 타임에 수업을 하는 학생들은 많아봐야 3~5명 더 있었고, 

가끔 선생님은 반주를 한 기분 좋은 상태로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몇 년 뒤 교환학생을 갈 수 있었다. 이건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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