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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재활기/교환학생을 준비하다

교환학생 준비하기(2)

by 김알람 202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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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원 선생님은 수능특강-영어 같은 수능 준비하기에 적절한 교재는 사용하지 않았고

내가 받고 공부한 교재는 그 선생님이 직접 모아 만든 것 같은 두꺼운 사설교재였다. 

선생님은 초등학생 때 유행했던 직독직해랑 비슷한 방식으로 영어 읽기를 가르쳤고 

사설 교재에 수록된 지문을 읽게 시켰는데 

몇 개월 동안 그 아래서 배우다보니 여전히 to 부정사가 붙는 동사와 ing가 붙는 동사 따위는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영어 문장을 읽을 수는 있게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그때의 영어공부가 내 수능 영어 점수를 파격적으로 올려주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수능날 나는 항상 그랬듯 시험 지문을 다 읽지도 못했다. 

마지막 지문까지 읽기에 나의 읽는 속도는 너무나 느렸기 때문이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 교환학생 같은 걸 준비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을 때에야 

나는 고등학생 때 내가 공부했던 사설 교재 속의 지문들이 

토플 reading 시험의 지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억지로라도 하나 끄집어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보편적인 영어실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 어떤 특정한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방법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전반적인 실력이 좋아지면 시험에서의 결과도 다소 나아질 수 있겠지만 

어떤 시험의 점수를 빠르게 올리고 싶다면, 

그 시험의 문제 출제 방식을 정확히 겨냥해서 공부해야 한다. 

 

영어학원의 선생님이 알려준 방식으로 나의 영어 읽기 실력은 (전에 비해) 일취월장했지만

결국 나는 수능에서 그 빛을 보지는 못했다. 

수능 지문은 토플보다 짧고, 문제를 내는 방식도 토플과 다르다. 

게다가 문법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시험 점수에 큰 영향을 준다. 

아마 그 선생님이 만든 사설 교재가 토플이 아니라 토익 시험과 유사한 교재였다면 

수능에서의 결과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토플과 토익, 수능을 각각 한 번씩 치뤄본 결과 

수능은 토플보다는 토익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고교시절에 대한 회상은 이정도로 넘어가고 다시 대학생때로 돌아가보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휴학을 했던 3학년 1학기 전에 

나는 이미 교환학생을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항상 나의 숙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지 않고 포기했던 모든 일들이 그랬듯, 

잘 해내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머릿속으로만 갈망했을 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방학시즌, 나는 두려움을 (나름) 떨쳐내고 

알바비로 신촌에 있는 토플준비학원에 등록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학원을 다니고 본 모의시험에서 

예상점수 62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는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토플은 읽기 30점 듣기 30점 말하기 30점 쓰기 30점으로

도합 120점 만점의 시험이다. 그런 시험에서 62점을 받은 것이다. 

100점 만점의 시험으로 생각해보면 51점을 맞은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다음 달 수업을 등록하지 않았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을 해봤지만 

'역시 안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나는 교환학생에 도전하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도 열심히 다니지 않고

하라는 단어 암기도 꾸준히 하지 않은 내가 모의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리고 토플 시험을 한 번 봐본 사람으로서 다시 회상해보면 그 학원에서 사라고 했던 단어장부터가 별로 유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토플을 보고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보고싶다는 생각은 그렇게 생각으로 끝나는 듯 했다.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이 대부분 그랬듯. 

 

하지만 3학년 1학기 이후 휴학을 하고 한학기 반을 아무런 계획 없이 날리면서 

내면의 우울은 정도를 모르고 계속 커져만 갔고

나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미약한 본능은 계속해서 나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의 무기력을 타파하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하는 게 명백했는데

나는 아직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도전을 기피하고 항상 안전만 추구하면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나의 본질에 

진저리가 쳐졌던 나날들 속에서 나는 내가 '시도'할 뭔가를 느릿느릿 찾아댔고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교환학생에 다시 도전하는 거였다. 

그리고 한 달 정도의 심사숙고 후에 나는 토플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걸 뭘 한 달 동안 고민하냐고 경악할 사람도 많겠지만

결정하는 일은 항상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A와 B 중에 뭔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이 사실은 더 나은 결정일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때문에 선택을 '보류'하는 상태야말로

나를 가장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보류'하는 상태는 어떤 결과도 낳지 못한다.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갈림길의 시작부분에 멈춰서면 

그냥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와서 나에게 이쪽 길로 가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그게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었고

성인이 되어 나 대신 선택해 줄 사람이 없어진 상황에서 

나는 그저 갈림길의 시작부분에 멈춰 선 채 

각자의 길을 선택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뒤쳐져 가고 있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 가만히 있는 것 같다는 걸 다시 깨닫고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더 커져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불안이야 말로 

내가 어느 쪽이라도 선택해 한 걸음 가는 일의 강력한 족쇄가 되었다. 

이미 늦었는데 잘못된 길을 선택해 다시 더 뒤쳐질 수 있다는 공포. 

불안이 커질 수록 나는 뭔가를 하기가 더 힘들었고 더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웃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의 확률이 커 보이는 교환학생 선발을 시도하고자 하는 선택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갔다 와서 또 다시 인생을 낭비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내가 항상 두려워 하던 영어에 도전해서 토플 시험을 봤고

무사히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한 학기를 외국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내가 다시 무저갱같은 불안으로 빠져들 때 나를 붙들어주는 소중한 경험이다. 

나는 항상 도전을 회피해 왔고, 나의 기질은 회피를 천직으로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서 성취한 경험이 있다는 것은 

나약해빠진 너덜너덜한 최소한의 자존감을 붙들어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한 번 해 봤으니 두 번도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자기가 너무 병신같을 때 여러분도 작은 성취를 해 보길 바란다. 

그게 얼마나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지는 성취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다음글에는 본격적으로 내가 토플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저번 글도 이번 글도 토플준비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정작 토플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아 

제목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미약한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라고 한다면

내가 토플을 준비한게 꽤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안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떠오르는 것이나마 열심히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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