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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재활기/일기를 쓰자

[220520] 용기는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두려워도 참고 하는 것

by 김알람 202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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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razen Nesic, www.pixnio.com

 

우연한 기회로 회사에서 게임을 기획하고 있다. 처음엔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들어온 회사에서 계속 일하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인데, 게임이라곤 대학 다니며 친구들과 오버워치를 했던 거나, 스팀 특가로 문명을 사서 일주일 만에 포기했던 내가 게임 기획을 하게 되다니. 세상 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물론 내가 기획한 게임이 실제로 만들어질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지원사업에 뽑히면 실제로 제작이 될 것이고, 뽑히지 않으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한다. 어쩌면 그다음 기회가 내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바로 지원사업 문서를 작성하고 나름의 리소스를 만드는 일이다.

 

친숙하지 않은 분야기 때문에 근 한달간 여러 가지 게임을 해보며 데이터를 쌓았다. 세상엔 정말 많은 게임들이 있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지원사업 서류는 써야 한다. 머릿속에서 나름의 논리를 구축하고 지원사업 신청서를 열고 타자를 치는데 점차 막막함이 몰려왔다.

난 여느 예대 졸업생이 그렇듯(?) 문서작업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기 때문이다. 시장분석처럼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통찰력을 발휘하는 부분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한글과 컴퓨터를 모니터에 띄워놓고 글자의 스타일 지정하는 방법부터 구글에서 검색하는데 막막함이 몰려왔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한달 전 어느 날이다. 한 달 전, L님(회사 대표)이 나를 불러 물어보았다. 회사에서 작은 게임을 만들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싶은데 혹시 아이디어를 내볼 생각이 없냐고. 그러면서 어떤 지원사업을 이야기하고, 본인이 생각한 일정을 말해줬는데 굉장히 빠듯했다. 나는 바로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일을 맡고 싶다고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면서 잘못될 위험성이 큰 일. 내 개인 시간을 업무에 사용할 수밖에 없을만한 빠듯한 일정. 아마 일 년 전의 나라면 절대로 맡지 않았을 것이다. 내 블로그의 초기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고 잘 못할 것 같은 분야는 절대 맡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나의 방어적인 성향을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좋게 말하니 방어적인 것이지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현재에 안주하는 패배주의(?)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점점 발전해야 하는데,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앞으로 걷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는 게 두려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남들은 점점 앞으로 가는데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비슷한 위치까지 함께 걸어온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기묘한 울렁거림을 느끼다가, 그들의 등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지면 패닉 상태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어떻게 해도 그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절망감을 핑계 삼아 또 우두커니 서있고 만다. 그러다 나보다 뒤에서 걸어온 사람이 내 옆에 서고, 또 나를 앞서가는 걸 보면서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할 뿐이다. 

 

우두커니 서서 남들은 어디까지 왔나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 달 전에도 그런 마음으로 L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어진 한 달은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시장조사를 위해 동종 게임을 플레이해야 해서 이런저런 결제를 하는데, 생전 써보지 않은 분야에 돈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임의 장르나 기획서 쓰는 법, 플로우 차트 작성하는 법을 구글링 하면서 주말을 보내고 나면 탈력감도 들었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으니 익숙한 패닉이 나를 덮쳤다. 내장이 쫄리는 느낌이 든다. 역시 괜히 하기로 했다는 생각도 든다. 서류작성이라는 익숙지 않은 분야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느린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준다. 순간순간엔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역시 도전하길 잘했다는 마음이다. 

 

오늘 출근길에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란 책을 읽는데 그런 구절이 나왔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참고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저자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인용한 거였는데 이 문장이 눈에 담기는 순간 가슴에 날아와 콕 박혔다.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참고 하는 것. 되뇌어보니 한 달간 시도 때도 없이 느껴졌던 명치의 이상한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를 계속 읽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재테크 때문이었는데 오히려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을 배운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 피곤해서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지금 느낀 걸 블로그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열었다.

 

과거에 나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했다. 이유는 모른다. 어리기 때문에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계발서가 뻔한 얘기들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위안과 힘을 얻는다. 자기계발서를 이용해서 일종의 자기 암시를 하는 것도 같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아무(?) 자기계발서를 들고 저자의 마음가짐을 읽으며 다시금 원동력을 얻는 게 최근의 루틴이다. 

 

만약 이 지원사업 신청이 끝나고 나면 나에겐 무엇이 남을까. 시스템을 생각하며 플레이했던 게임 플레이의 경험이 남고, 유구히 약했던 서류작성 요령이 한 단계 레벨 업 할 것이다. 지원사업 숙련자인 L에게서 들었던 돈주고도 못 들을 굉장한 팁들이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계속 들었던 불안감을 이기고 잘 모르는 분야에 도전했다는 나만의 작은 성공 경험이 남을 것이다. 서류에서 탈락하더라도 한 달 동안 겪은 경험은 나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파도처럼 요동치는 가슴을 애써 달랜다. 이 문장을 끝으로 오늘을 마무리하려 한다. 물론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거긴 하다. 그러고 나서 내일 다시 서류작성을 하며 울렁거림을 느끼겠지. 진짜로 이만 포스팅을 마친다. 그럼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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