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나 자주 등장하는 이름 '마작'. 생소한 놀이(?)이지만 내 주위에는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평소에 마작이 궁금했는데, 어쩌다 지인 단톡방에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지인이 7월에 개강하는 정동 마작 교실 26기의 수강신청 링크를 보내주었다.
'일요 정동마작교실'
(인스타 아이디 @mahjong_seoul)
사진을 보면 작게 지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작의 역사를 설명하려고 선생님이 그려놓으신 그림이다.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게 지루할 거란 처음의 생각과 다르게 꽤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선 마작이 소수만 즐기는 게임이지만 마작의 본원지인 중국, '리치 마작'이라는 변형 마작을 즐기는 일본, 그 외에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 등에서도 마작이 대중적인 게임이라고 한다.
1920~30년대 사이에 우리나라 상류층들 사이에서도 마작 열풍이 불었는데 그 이후 명맥이 이어지진 않았다. 한국 역사 수업이 아니라 마작 수업이다 보니 마작 유행의 쇠퇴 이유에 대해 자세히 다루진 않았다. 아마 미국에서 마작을 배운 일본 상류층이 조선에 마작을 유행시켰으니, 광복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문화도 사라진 것이 아닌가 지레짐작해볼 뿐이다.
상해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마작. 고스톱의 룰이 지역마다 다르듯, 마작의 룰도 나라마다 조금씩은 다르다. 정동 마작 교실에서 배울 것은 일본의 '리치 마작'이었다. 일본 마작 패는 중국의 마작패의 1/2 사이즈로 지금 사진에서 보고 있는 게 가장 정석적인 일본 마작의 크기다.
가장 위에 나열된 7개의 패는 문자 패고 아래에 순서대로 나열된 27개의 패는 숫자 패다.이 34개의 패가 종류별로 4개씩 있는데, 총 136개의 패를 이용해서 3, 3, 3, 3, 2의 세트를 가장 빨리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게 '리치 마작'의 규칙이다. 한 세트는 같은 그림이 그려진 패 3개 (마지막 세트는 2개)를 모으거나, 1-2-3 혹은 4-5-6 같이 이어지는 세 개의 패를 모으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플레이어는 처음에 무작위의 13개 패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돌아가면서 패를 뽑고, 내가 가진 패를 버리면서 점점 3, 3, 3, 3, 2의 세트가 만들어진다.
기본 규칙을 배운 후에는 테이블에 같이 앉은 사람들과 간단한 게임을 해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8번이 넘는 연습게임 동안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너무너무 자존심이 상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럴만했다.
나는 욕심이 많아 버리는 걸 잘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손에 모든 걸 쥐고 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버리지 말아야 할걸 놓치곤 한다. 가끔. 아니... 자주.
수업을 진행하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마작을 하면서 '나'란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건 뭘 뽑을지가 아니라고. 게임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른 완전히 다른 일이다. 바로...
어떤 패를 버리고 어떤 패를 남길지를 결정하는 것.
마작 패는 모두 뒤집어져 있기 때문에 무엇을 뽑을지는 알 수 없다. 그걸 알 수 있다면 사기꾼이거나 투시 능력자일 것이다. 비상한 계산으로 상대가 버린 패에서 상대가 만들려는 모양을 유추할 수 있는 마작 타짜거나 말이다.
뽑을 패를 정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것. 세트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패를 남기고, 가능성이 낮은 패를 버리면서 조금씩 승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작에서 승리를 하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를 잘 알아야 한다. 더 '기회'가 높은 쪽을 남기는... 전략적인 버리기야 말로 승리의 요건인 것이다.
기회의 가능성을 정확히 판단하고 낮은 가능성을 과감히 버리기
생각해보면 난 예전부터 버리기를 못했다. 무엇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인지, 더 필요한 것인지, 더 좋은 기회인지... 판단하는 것을 미루고 미루면서 여러 기회들 중 하나를 오롯이 선택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와 양쪽 모두 실패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마작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마작을 하다 보면 보드게임 시시해져 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작이 그 정도로 재미있을까 의문만 떠올랐지만 어쩌면... 마작이 다른 모든 보드게임들을 시시하게 만드는 이유는 비단 재미뿐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나에게 무슨 패가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내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가진 것 중에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계속 구분하는 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같지 않은가. 우리가 쥘 수 있는 건 13개라는 제한된 패뿐이고, 기회라는 이름의 사건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찾아온다. 정확히 원하는 기회를 골라서 잡는 일은 불가능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손에 쥔 13개의 패 중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내가 한 선택, 내가 남긴 패가 마지막 순간에 의미 있는 3, 3, 3, 3, 2의 모양이 될 수 있도록 더 높은 가능성을 선택하면서.
무엇을 남길지, 버릴지 선택하지 못해 결국엔 모든 것을 흐지부지 끝내버리는 나의 나쁜 버릇은 간단한 룰만 적용한 연습 경기에서도 번번이 발휘되었다. 연습 마작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건 당연하다. 고민고민하다 나는 항상 남길 것을 버려버리곤 했으니까.
어쩌면 마작을 통해 버리기를 연습하면서 나의 나쁜 버릇도 조금씩 고쳐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버리기와 남기기. 그 행동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인생재활기 > 일기를 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726] 서울 인근 바다, 인천 영종도 당일치기 여행(2) (4) | 2022.07.31 |
---|---|
[220726] 서울 인근 바다, 인천 영종도 당일치기 여행(1) (4) | 2022.07.31 |
[220706] 스콜과 나, 그리고 구글이 찾아준 휴대폰 (5) | 2022.07.07 |
[220702] 불안과 게으름 (4) | 2022.07.02 |
[220615]구글 애드센스: 5전 6기로 성공 (2) | 2022.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