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요약
서대문역 근처에 있는 정동마작교실에서 일본 마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마작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인스타에서 @mahjong_seoul를 검색하면 일요 마작 교실 수업 신청을 할 수 있다. (광고 아님, 내 돈 주고 가서 배우는 거임)
너무너무 어려운 마작 두 번째 시간
이전 시간엔 3,3,3,3,2로 그룹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번엔 조금 더 나아갔다. 바로 점수를 내는 법이다. 고스톱에 점수가 있듯 마작에도 점수가 있다. 3,3,3,3,2의 모양을 만드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일 뿐, 모양을 만드는 것 만으로는 이기지 못한다. 점수를 따야 한다.
사진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나눠준 족보다. 이름 옆의 동그라미 안에 적힌 것이 각 족보의 점수다. 어떤 족보를 배웠는지 일일이 나열해봤자 재미도 없을 테고, 솔직히 기억도 가물거려서 연습 게임 중에서 내가 노렸던 쉬운 족보만 짧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사각형으로 패의 산을 쌓고, 동, 남, 서, 북에 앉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뒤집힌 패를 하나 가져가고 내 패를 버리는 것이 마작의 전부라면 전부다. 이전에 말했듯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패를 버리고 남길지를 선택하는 것뿐. 운칠기삼의 흐름으로 들어온 패를 관찰하며 최대한 가능성 있는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외우기 쉬워서 꾸준히 노렸던 족보는 자풍 or 장풍으로, 내가 앉은자리의 방위와 맞는 문자패 3개로 1점을 내는 게 자풍이다. 그럼 장풍은 뭐냐? 일본 마작은 네 명이서 진행하고 총 8판이 한 라운드다. 그리고 동, 남, 서, 북 순으로 차례가 진행되며 한 판이 끝나면 시계방향으로 선이 넘어간다. 첫 번째 한 바퀴는 동장, 두 번째 바퀴는 남장이므로 각 장의 문자를 3개 모으면, 내 방위가 어떻게 되느냐와 상관없이 1점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게 장풍이다. 즉, 동장일 때는 내 순서가 남이든 서든 북이든 상관없이 동 이 적힌 패 세 개를 모으면 1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문자패 중 삼원패의 같은 모양을 세 개 모으는 것으로도 1점을 얻을 수 있는데 이걸 삼원풍이라고 한다.
자풍, 장풍, 삼원풍. 처음에 배웠던 족보고 외우기도 쉬워서 열심히 노려봤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작패 중에서 같은 문자는 총 4개. 이 중에 3개를 선점해야 하므로 생각해보니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된다.
초보자가 노려볼만한 것은 서민이란 족보다. 족보 이름이 진짜 서민인지 애칭(?)인지는 모르겠다. 숫자 패 중에서 1,9를 제외한 2~8까지만으로 3,3,3,3,2를 만들면 1점을 얻을 수 있다. 문자패는 당연히 섞이면 안 된다. 서민의 반대로 1,9를 포함한 문자패로만 3,3,3,3,2를 만드는 귀족이라는 족보도 있다고 한다. 안될 것 같아서 눈길도 안 줬다.
마작의 정수 리치-멘젠쯔모
특정 패를 모으는 것 말고도 점수를 얻을 방법이 있다. 바로... 이기기 바로 전까지 패 공개를 하지 않고 리치를 선언하는 것이다. 리치마작에선 특정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 버린 패를 주워올 수 있는데, 그렇게 패를 주워오면 내가 주워온 패로 어떤 모양을 만들었는지 다른 사람들 앞에 공개해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패를 한 번도 주워오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만 게임을 진행했으면 패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패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은 이 상태를 멘젠이라고 부른다.
멘젠인 상태로 쭉 차례를 돌다가, 마지막 패 하나로 3,3,3,3,2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리치를 외칠 수 있다. 리치를 외치는 것만으로 1점이니 승리의 필요조건을 달성하게 된다. 리치를 외친 상태에서 다시 내 차례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의 패를 주워서 승리하게 되면 이를 일발이라고 부른다. 일발도 1점을 준다.
그럼 쯔모는 뭐냐? 마지막 패 까지도 남의 패를 줍지 않고 내 힘(?)으로만 3,3,3,3,2를 완성하면 그게 쯔모다. 남의 패를 주워 3,3,3,3,2를 만들면 론!이라고 외치지만 순전히 내 힘으로 진행했을 때는 쯔모! 를 외친다. 마작이란 멘젠쯔모의 형태를 만들어가며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등 떠밀려 이룩한 한 번의 승리
첫 번째 수업시간에는 거듭된 연습게임에도 한 번을 이기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 번은 이겨야지, 하며 눈에 불을 켰지만 반쪽짜리 승리 한 번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이번에도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지독한 문제가 골머리를 썩였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이고... 고민하다 보니 뭘 버릴지 뭘 남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진짜로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뒤에서 서성거리던 선생님이 리치 선언을 하며 뭔가를 버리라고 했고 어... 어? 하는 사이에 리치 1점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건너편 빌딩의 분식점에서 앙꼬 없는 찐빵, 아니 내장 없는 순대와 떡볶이를 씹으며 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무엇이 문제냐. 어째서 고민 고민 끝에 나에게 덜 필요한 것만을 내 손에 남기게 되느냔 말이다. 무엇을 버릴지 모르는 건 결국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데... 두 번 밖에 하지 못한 마작 속에서 약 30여 년의 인생이 촤르륵 필름처럼 영사되었다.
예전에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익명의 글 속에서 가슴을 둔탁하게 때렸던 한 문장이 생각났다.
나는 왜 이렇게 나쁜 패만 뒤집는 걸까?
당시엔 마작이란 게임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럼에도 익명의 저자가 하고픈 말은 무지의 장벽을 통과해 가슴속에 안착하는 듯했다. 마작을 조금은 알게 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나는 왜 고민 끝에 필요 없는 패만 남기는 걸까?
고민을 왜 할까.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왜 고민이 될까? 무엇이 더 좋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 무엇이 더 좋은지 모른다. 이걸 고르면 저게 더 좋은 것일까 봐, 저걸 고르면 이것이 눈에 밟혀서 한참 동안 내 패만 노려본다. 마작 게임이면 다행이다. 옆 사람 눈치가 보여 무엇이라도 선택하니 말이다. 인생엔 옆 사람이 없으니 시간제한도 없다. 째깍째깍 시간이 가는 동안 나는 내 패만 쭉 노려보고 있다. 패가 버려지지 않고 새 패가 들어오지 않으니 3,3,3,3,2의 모양이 완성되기란 까마득해 보인다.
버릴 때도 문제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걸 밀고 가야지 내 마음은 갈대처럼 휘적거린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밀폐된 카페 속에서 내 마음만 요동친다. 매 판을 마지막 판처럼 생각하니 보수적이 되고, 우물쭈물하다 보니 버린 패를 주워올 기회는 이미 날라간 지 오래. 맘 속으로 어떡하지? 만 외치다 정신 차려보면 게임 끝이다.
게임은 계속되는데... 왜 내 가슴은 그걸 모를까. 이 게임이 끝나면 다음 게임이 오고 이 기회가 사라지면 다음 기회가 또 오는데도 나는 매 순간순간 간이 쪼그라들어 한판을 하면 기력이 빠지고 만다. 기회는 오고, 게임은 계속되고, 인생은 마라톤인데 말이지. 패를 버리고 가져오고를 계속하면 마작 타짜는 못 되어도 과거에 비해 실력이 늘기는 할 텐데도, 나는 이 것이 마지막 판인 양 내 손에 든 것을 노려만 보다 기력이 빠져버린다. 그 나쁜 버릇이 내 안에 인이 박혀 기력은 빠지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자 동시에 너무나 안락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쁜 버릇, 쓸데없는 스트레스, 거짓 노력, 거짓 후회. 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행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남은 찌꺼기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떡볶이와 함께 나온 오뎅국물 한 숟갈과 함께 모든 생각들을 꿀꺽 삼켰다. 아주 썼다. 왜 나는 마작을 하고 있는데 내가 스스로한테 씌운 속세의 굴레와 고뇌가 반투명하게 보이느냔 말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마작이 어려운데도 끊을 수 없다고 하는 건가 싶다. 하하하.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명상 영상이나 보며 머리를 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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